한재경 | 신나는협동조합 이사장
올해 수혜자에게 돌아갈 펀드는 대략 10,000불로 예상된다. 내 소비가 이웃이 되는 경험이었다.
2020년 가을은 유난히 분주하다. 하루 18만명씩 늘어나는 미국 코로나 감염자 소식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에 분주하고, 신나는협동조합 물품이 도착해서, 배송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렇게 안밖으로 분주했던 적은 흔치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존의 필수요건이 될 수록, 이웃을 향한 마음의 에너지는 더 간절하게 샘물터지듯 우리 안에서 터지고 있다.
이 글은 미국에서 작게 나마 벌어지고 있는 착한 소비자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는 성찰이다. 한국은 협동조합 운동이 강력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미국 내의 한인공동체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저지에서 시작된 협동조합 운동이 뉴욕과 중부, 서부, 멀리 텍사스의 협조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중간보고 성격이기도 하다.
배는 채우고 마음은 비워야 한다는 노자의 말을 되새긴다. 배를 채우는게 먼저다. 그래야 마음 안에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의 공간을 비우든 말든 각자가 결정한다. 배를 채우려면, 시장(마켓)을 봐야 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현실적인 사실이다.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보면, 시장을 보는 기준은 무의식적으로 저렴하고 좋은 물건에 손이 먼저 나간다. 여기서 잠깐 멈춘다. 이게 맞나?
다시 생각한다. 소비자인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생산자인 농부와 어부, 물품거래의 이문이 어디로 가는지 다시 들여다 본다. 인터넷 시대, 세계화 시대는 소비자가, 어리석은 왕이긴 하지만, 왕처럼 군림한다. 이런 판세에 균열을 일으키고, 생산자와 이문의 향방이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갈 가능성을 찾는 일은 소비자 중심시대에 가치있는 일이다. 왜냐면 소비자 중심시대는 무한소비를 향해 내달리고, 이는 파괴적인 결말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세상에 무한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무한히 보이는 물도 지구가 탄생한 이래 단 한방울도 늘거나 줄지 않았다고 한다. 하물며 무한 소비와 무한 생산의 결말은 단연코 파괴적이다.
우리의 가능성은 입증되었다. 올해로 3년 차, 신나는 협동조합의 ‘착한소비’는 전세계적인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공동구매의 양이 작년의 두배를 넘었다(작년 17,000불, 올해 36,000불, 여기에 기부자도 증가했다). 이같은 성과에는 숨은 공로자와 단체가 있다. 다만 이분들이 숨은 공로자로 나선 그 힘은 착한 소비에 대한 가치에 있다고 믿는다.
공동구매에서 소비자인 우리는 왕처럼 치대지 않았고, 이웃으로 함께 했다. 완도 햇김과 한국산 햇고춧가루를 공동구매하면서, 비교할 수 없는 품질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생산자인 어부와 이문의 수혜자인 서류미비 한부모 가정과 다카 장학생을 동시에 심중에 두어서 그런지, 소비에 신이났었다. 필자의 경험은 내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던 소비와 확연히 구별되었다.
올해 수혜자에게 돌아갈 펀드는 대략 10,000불로 예상된다. 내 소비가 이웃이 되는 경험이었다. 또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완도 어부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독자들에게 전해지길 빈다. 신나는 협동조합은 어부들이 요구하는 햇김 가격을 깍지 않았다. 그분들의 수고와 흘린 땀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으셨다고 믿는다.
물론 한계는 있다. 경쟁력에서 많은 부분을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의존했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고스란히 물품가격에 얹혀지게 된다. 장애인 고용과 합법적인 협동조합의 형태에 대한 과제도 남았다. 햇김 수확은 10월 말부터 시작되고, 11월까지 미국 구매자에게 전달해 주려면, 항공으로 운송해야만 했다. 항공비용을 포함한 유통의 혁신이 가장 힘든 과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는 협동조합의 실험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지난 3년 간의 시간이 그랬다. 유통을 혁신시키는 일은 계속 모색되고 있고, 올해는 이사진이 꾸려졌고, 많은 분들과 이민자보호교회와 민주넷 같은 단체의 관심과 에너지가 모아지고 있다. 지금은 가을철 햇김 수확에 맞춘 ‘계절형’ 임시 협동조합으로 운영되지만, 앞으로 뉴저지에 매장을 개설하는 ‘항시형’ 소비협동조합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이문을 사회적 약자에게 되돌리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그림이 완성되는 그날, 그 높은 담벼락을 부셔버릴 날이 올 것이다.
중요한 성과를 추가한다. 엘에이 평화의 교회에서 자주 홈리스 사역을 나간다고 한다. 미국에서 렌트비는 지옥이다. 버젓한 중산층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홈리스가 될 개연성이 높다. 그만큼 렌트비의 위협은 살인적이다. 홈리스 사역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느끼는 우울과 많은 생각의 파편들은 우리의 폐부를 파고 든다.
신나는 협동조합이 뉴욕, 뉴저지,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와 함께 서류미비 한부모 가정의 렌트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는 홈리스와 관련해서 자뭇 효과적이다. 많은 부분을 이민자보호교회에서 감당하지만, 매달 500불씩 1년간 지원하는 한부모 가정이 10가정을 넘었다. 이번 공동구매의 이문을 추가하면, 11가정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서류미비가정만큼 어려움을 겪는 이웃도 없다.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없이 광야의 찬바람을 홀로 맞아야 하는 기가 차는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홈리스의 위협에 가장 최전선에 노출된 이웃을 우리의 소비가 안전막을 쳐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며칠 후면, 완도에서 수확한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햇김이 우리 밥상에 오를 것이다. 바삮이며 입안에서 감겨붙는 햇김의 향기와 식감을 떠오르려니 기분이 좋다. 물건값을 미리 내고도 보채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구매자들께 감사드린다. 일반 시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느긋함이 여기서 벌어지는 것 또한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