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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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2020년 9월

난 성소수자다!

Melinda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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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성소수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MTF 트랜스젠더이다. 부디 날 성소수자로서 알아주길 바란다.

난 성소수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MTF 트랜스젠더이다. 부디 날 성소수자로서 알아주길 바란다. 성소수자는 성소수자 가족에서만 태어나지 않고, 헤테로/시스 가정에서도 태어나고 자란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부모와 주변 환경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자라면서, 만약 그 문화가 호모포빅/트랜스포빅 하다면 스스로를 증오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라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우울증으로 자기 삶을 파괴하는 사람도 있고,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우울증과 자기학대에 지배당하며 평생을 고통 중에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누가 왜 성소수자가 되는지는 결론이 없는 논제이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를 묻는다면 그건 질문자의 무지만 드러낼 뿐이다. 후천적이라면 바꿀 수 있다는 증거가 있는가? 바꿔야 되는가? 세상에 수많은 병이 있고 인체에 일어나는 수많은 종류의 변화가 있는데, 생득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제거해 버리고 살아야 하는가? 반대로 선천적이면 어떤 증상도 다 인정하고 사는가? 아니다. 또, 선천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어야 하는가? 태어나는 시점 이전에 규정되어야 하나? 엄마 뱃속에서의 영향은 어떠한가? 생명과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현대과학과 의학은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고려하여 무엇이 "병"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그 판단은 당연히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지식체계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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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성소수자의 정체성은 ‘죄’가 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기존 신앙체계의 잘못을 들추면서 “무엇이 더 큰 죄인지”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런 비교대상에 나 자신을 놓기 이전에 나는 나 스스로를 존경한다. 만약 내가 죄 때문에 성소수자가 됐다면 그것은 누구의 죄인가 묻는다. 나의 죄인가? 아님 내 부모, 그도 아니면 형제의 죄인가? 지적해 보라. 나도 크리스천이지만 이런 경우에 회개하고 기도하면 해결된다고 말하는 건 무관심과 무책임을 드러낼 뿐이다.

나에게 이런 주장은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진다. 알고 싶지도 않고 더군다나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는 차가운 무관심으로 들려온다. 성정체성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손가락질 받고, 돈도 못 벌고 정상적인 생활을 살지 못해서, 끝내는 죄책감에 짓눌려 목숨을 끊더라도 나랑 상관없다고, 다만 나의 비이성적인 신앙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걸 방해하지만은 말아 달라는 얘기로 밖에 안 들린다.

나는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니고, 미국에 사는 한 사람의 크리스천일 뿐이다. 나의 교회는 나의 정체성을 정죄하지 않고 나를 품어주고 도와주었다. 나는 나의 종교적 결론이 있고, 나의 종교는 나를 성소수자라 해서 정죄하지 않았다.

이걸 죄나 병이라 부를 수 없다면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왜 스스로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그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가. 내가 태어나면서 국가 인종 가족을 고르지 않은 것처럼, 이런 사람이 되기로 한 적도 없다. 오히려 난 이런 사람이 아니길 열심히 기도하며 자라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이렇게 불편함 많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심각한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너무나 많은 삶을 선택하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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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건 그들의 문제지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난 이걸 숨길 의도가 전혀 없다. 어차피 나는 더욱 더 변해 갈 것이고, 지금 나를 받아줄 수 없는 사람들이면 나중에도 나를 받아줄 수 없다. 무엇보다 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나서도 내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내가 이 사실을 드러내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성소수자는 특별한 게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태어날 수 있고, 몰랐더라도 자라면서 알게 될 수도 있다. 우리도 남들과 같은 확률의 가정에서 태어나 같은 확률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호모포빅/트랜스포빅한 어린시절을 보냈는가, 나도 그랬고 나의 많은 성소수자 친구들도 그랬다. 우리는 많은 경우 스스로를 증오하는 환경에서 물리적, 정신적으로 자해를 하며 자라난다.

당신 주위에 성소수자가 아무도 없는가, 평생 한번도 본 적이 없는가. 당신은 확률적으로 분명히 인생의 어느 순간에 성소수자를 알고 교류하며 지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당신을 믿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노출되는 곳이 되길 바란다. 성소수자라면 특정 종류의 직업군, 특별한 몇몇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는 시스/헤테로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교육받고 자라나서 일을 하며 산다. 당신 주위에 성소수자가 아무도 없는가, 평생 한번도 본 적이 없는가. 당신은 확률적으로 분명히 인생의 어느 순간에 성소수자를 알고 교류하며 지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당신을 믿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건 정말 드문 경우이지만, 이렇게 라도 세상에, 특별히 한국어 사용자 중에 또 한 명의 성소수자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중에 언제 어디서고 다른 성소수자를 만난다면 조금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커밍아웃 했을 때 나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나 같은 사람을 봤었던 경험을 나누어 줬다. 그 수많은 커밍아웃 덕에 지금 내가 혜택을 받고 살고 있고, 나도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힘찬 박수를 보낸다.이 험한 세상에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당신이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질 꺼라 믿는다.

나는 예전의 이름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만약 나와 지속적 관계를 맺길 원한다면 새로운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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