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3년, 미등록 이주민 한나씨 이야기

2021년 8월 성공회 용산나눔의 집에서  이야기꽃과 한나씨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2008년, 한나(가명) 씨는 한국에 왔습니다. 한나 씨가 처음 이 땅에 도착했을 때는 꿈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셋째를 돌볼 나이가 되면 돌아간다는 꿈이요. 너무 큰 꿈이었을까요. 그녀가 낯선 땅에 이주하고 경험해야 했던 현실은 너무 비참했습니다. 현재, 다리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넷째를 낳아 기르고 있는 현실과 그녀를 압박하는 많은 문제가 이를 말해줍니다. 그럼, 미등록 이주민 한나 씨를 만나 보실까요.

속아서 온 한국
한나 씨가 처음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많은 필리핀 여성과 비슷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외국으로 나오게 되지요. 한국에 오기 위해 그가 만난 인물도 그 지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대와 두려운 마음으로 도전한 그녀는 엔터테인먼트 분야 비자로 한국에 왔습니다. 2008년 9월의 일이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걸었던 기대는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았습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한나 씨가 접한 일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추는 춤을 강요 받았고, 손님과 함께 나가도록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녀는 필리핀에 있는 가족을 위해 인내했습니다. 아직 어린 세 명의 아이들에게 돈을 부쳐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4개월이 지나던 겨울, 한나 씨는 그곳에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주나 다름없었습니다. 2년이 지나면 비자도 만료되고, 처음에 이루려던 목적에도 위배되었으니까요. 무엇보다 그후에 이런 삶이 기다리는 줄 몰랐습니다. 망설였지만, 돌아갈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와 통화하다, 조카가 경기도 광주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약했던 비행기를 취소하고, 광주로 넘어갔습니다. 조카가 일하는 공장에서 노동했지만, 당시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한다는 한국 정부의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쫓기듯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그때부터 한나 씨는 미등록 이주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세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갑자기 태어난 넷째

넷째가 태어난 건 지난 2020년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남자친구는 아이가 태어나도 아무런 뒷받침을 할 수 없으니, 아이를 지우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헤어지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습니다. 한나 씨도 고민했습니다. 고국에도 3명의 아이가 있었고, 무엇보다 계획하지 않은 아이였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당장의 수입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낙태를 결심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습니다. 낙태하면 자신의 조각 일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아이를 낳겠다고 말하자, 바로 떠나갔고 지금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이제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요. 한국에 처음 와서 남겨졌던 바로 그 시기처럼.

배가 불러와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당시 하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세 아이에게 보내던 생활비도 중단되었습니다. 돈을 하나도 벌 수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 그를 돕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알고 지내는 목사 소개로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했으니까요. 병원장은 미등록 이주민의 출산을 돕고 있었습니다. 병원비도 절반 이하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니콜(가명)은 이제 9개월입니다. 니콜이 태어난 후, 한나 씨는 친구 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당장 갈 곳도 막막하고, 잠시 몸을 쉴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냥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집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미등록 이주민, 이 이름이 다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출은 커녕 방도 쉬이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숨 막히는 빚과 이자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 한나 씨가 머물 집의 가격입니다. 이 집에서 니콜과 함께 지내며 살아갈 예정입니다. 1층의 좁은 공간이지요. 그녀는 보증금 300만 원을 겨우 마련했습니다. 지인에게 300만 원 보증금을 빌렸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 300만 원이 그녀의 목을 짓누르지는 않을까요?

사실, 일하지 못하는 기간에도 400만 원의 빚이 쌓였습니다. 아이를 낳는 동안 쉬어야 했으니까요. 문제는 이자입니다. 매달 7%씩 이자를 내야 합니다. 300만 원도 매달 7%씩 이자를 내야 합니다. 매년 7%의 이자를 내도 비쌀 텐데, 매달 7%씩 이자를 갚아야 합니다. 28만 원과 21만 원, 둘을 합치면 이자만 매달 49만 원이 나갑니다.

400만 원과 300만 원,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한나 씨에게는 너무나 큰 돈입니다. 매달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 거기에 월세까지 더하면 80만 원이 나갑니다. 일을 쉬고 있을 수 없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른 집 청소를 해주러 9시부터 10시까지 나갔습니다. 그럼, 아이를 맡기는 비용 40만 원이 추가됩니다. 그냥 숨만 쉬어도 한국에서는 120만 원이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필리핀에 돈은 부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달 120만 원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월 150만 원 수입으로는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 돈을 벌 때 상황이 그렇다는 겁니다. 현재 한나 씨는 다리가 계속 부어 있는 상태라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그것도 시간을 많이 줄여 5시까지밖에 일을 못 합니다. 현재 몸 상태 때문에 벌이가 좋지 못해 걱정이 큽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올까?

한나 씨는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민의 그늘이 그녀를 늘 덮칩니다. 일을 찾는 것도 힘든데, 일해도 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과 차이가 납니다. 때로는 미등록 이주민인 그녀가 돈을 더 받으면, 동료 외국인 노동자가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한나 씨는 눈물이 납니다.

한나 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국 가정에서 경험하는 문제입니다. 그녀가 ‘대표’라고 불리는 사람의 집을 청소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대표는 예의 바르게 그녀를 대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와 아이가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I hate you”, “I kill you”라고 이야기하며, 증오 표현을 계속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혐오 발언을 옆에서 듣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에 있는 내 아이들은 저렇지 않은데, 한국에서 풍족하게 자라는 아이가 왜 이럴까. 왜 엄마는 이런 표현을 듣고 가만히 있지? 나였다면 아이를 말렸을 텐데.”

이런 생각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필리핀에서 곱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봐 주는 사람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저런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주었습니다. 잘 자라는 세 자녀의 모습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보는 어른도 없는 상황에서 자랐는데도 말이지요. 큰아이는 벌써 24살입니다.

한나 씨 부모님도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필리핀에서 떠나기 전, 어머니는 필리핀으로 떠난 뒤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한국에 있는 엄마, 한나 씨가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큰아이가 20살이 넘어 동생들을 돌보고 있지만, 한나 씨가 돈을 보내야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필리핀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은 한나 씨. 세 아이가 자라는 모습도 거의 보지 못하고, 벌써 한국에 온 지 14년을 맞이합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지내지 못한 입학식, 졸업식, 크리스마스, 새해 등이 되면 미안해집니다. 그러나 이제 니콜이 태어났으니, 다시 한번 이런 시기가 오면 함께 잘 지내려고 합니다.

이제 신나는협동조합에서 보내주는 월세 지원금이, 한나 씨를 조금이나마 웃게 합니다. 정말 작은 도움이 그녀에게는 너무 큰 힘이 됩니다. 아직 갚아야 할 이자와 원금이 있지만, 니콜과 열심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답답한 상황에서도 작은 희망을 봅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돈을 보내는 꿈을 꿉니다.